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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1장 없는 LCA는 상상일 뿐

2025.03.26탄소중립연구원Editor 유현서

이번 글에서는 LCA 중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을 다루려 합니다.

이것도 넣어야 돼요?

(번외: 이것도 넣으셔야 돼요.)

ChatGPT를 이용하여 생성, 저자 수정

어떤 데이터를 포함할지, 말지가 왜 헷갈리는 것일까요? LCA를 하는 목적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배운 LCA는 실제와 다릅니다. ‘원료 채굴 - 부품 조립 - 가공 - 포장’과 같이 단순하게 떨어지는 상상과 달리, 실제 공장은 원료 재활용, 손실 처리, 유틸리티 공급 등… 수많은 복잡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요.

따라서 무작정 데이터를 수집하기 앞서,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LCA를 하는지 뾰족한 방향성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 다음 방향성에 맞춰 어디까지를 우리 범위에 포함하고, 어떻게 경계를 지을 것인지 결정해야 해요. 쉽게 말해 원정을 떠나기 전, 구체적인 목적지를 정하고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LCA의 4단계 중 목적과 범위정의의 기본적인 컨셉을 다룹니다. 실제로 공장에서 수집해야 할 데이터의 유형은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고, 이번 글에서는 근본적으로 어떤 데이터를 조합하는지에 대한 구조를 알려드리려 해요. 조금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LCA 프로젝트 설계의 뼈대가 되는 개념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고객사 또는 LCA 컨설팅 업체로부터 ‘이런 데이터 기입해주세요’하는 데이터 수집 파일을 받았다면, 그래서 데이터를 넣고는 있으나 이 정보가 정확히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쓰인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면, 이 글이 ‘이 데이터를 왜 수집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LCA의 목적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정해야 하고, 이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나요? 🔭
  • 어떨 때 공장의 데이터를 사용하고, 또 어떨 때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나요? 🗺️

시작 전, 좌표 설정 한번 하겠습니다. 🎯

지난 글에서, LCA의 절차는 총 4가지로 구성된다고 말씀드렸어요. 이번 글에서는 그 시작이 되는 목적 및 범위정의를 다룹니다.

ILCD Handbook: General guide for Life Cycle Assessment - Detailed guidance (ⓒ European Union, 2010)의 이미지를 번역하여 저자 제작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목적과 범위정의는 LCA의 첫 단추입니다. 이 단계가 흔들리면, 아래와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어요.

  • 필요한 데이터가 누락되거나, 중복 산정된다.
  • 분석 시 사용한 조건이 고객사에서 제시한 조건에 어긋나 다시 수행해야 한다.
  • 분석을 끝냈음에도 그린워싱으로 비판을 받아, 회사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자칫 ‘서론이겠거니’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으나, 이 단계에서 부실공사가 이루어지면 뒤로 갈수록 곤란해집니다. 그러니 다른 어떤 단계에서보다도 꼼꼼하고 정밀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B2B와 B2C 기업의 LCA가 다른 이유

B2B와 B2C 기업의 LCA는 대체로 ‘분석 생애주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B2B 기업은 주로 고객사에 납품하는 제품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LCA를 합니다. 반면 주로 완성제품을 생산하는 B2C 기업은 소비자 또는 외부에 정보를 제공하고 홍보하는 목적으로 LCA를 수행해요. 이러한 목적의 차이로 B2B 기업은 제품이 자사 공장을 거쳐 납품되기 직전까지를 기준으로 LCA를 수행하는 반면, B2C 기업은 제품의 생산 이후 유통, 사용, 폐기되기까지의 전 생애주기를 기준으로 LCA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 제작, PPT 아이콘 활용

용어를 중심으로 얘기해볼게요. 생애주기를 표현할 때, 주로 다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 Cradle-to-Gate(요람에서 문까지): 자연에서부터 원료를 채굴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제품을 제조하기까지(공장 문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 Cradle-to-Grave(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연에서부터 원료를 채굴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제품을 제조, 사용, 폐기하기까지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연료의 경우, 유사하게 Well-to-Gate(WTG), Well-to-Tank(WTT), Well-to-Wheel(WTW)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 Well-to-Gate(WTG) - 원유 시추부터 연료 제조까지
  • Well-to-Tank(WTT) - 원유 시추부터 연료 주유/충전까지
  • Well-to-Wheel(WTW) - 원유 시추부터 주행까지

이처럼 LCA를 왜 분석하고,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지에 따라 적절한 분석 범위는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 회사에 맞는 뾰족한 분석 목적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해요. LCA에 대한 국제 표준에 해당하는 ISO 14044:2006에서는, 다음의 4가지 사항을 명확히 하도록 제시하고 있습니다.

  • 수행 이유
    (the reasons for carrying out the study)
  • 예상 청중
    (the intended audience)
  • 예상 적용 방안
    (the intended application)
  • 비교주장 여부
    (whether the results are intended to be used in comparative assertions intended to be disclosed to the public)
    → ‘플라스틱 빨대 vs 종이 빨대’와 같이, 두 시스템 간의 비교를 위하여 LCA를 수행하는지 여부를 의미합니다.

목적정의는 우리가 나아갈 원정의 목적지를 설정하는 과정입니다. 각각의 사항에 따라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물이 달라지니, 뾰족하게 정의 후 앞으로의 프로젝트 과정에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해요. 🧭


제품시스템으로 LCA의 큰 그림 그리기

목적정의가 원정의 목적지를 설정하는 과정이었다면, 범위정의는 LCA 프로젝트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만큼 결정해야 할 사항도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범위정의에서 확립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시스템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해요.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이 데이터를 왜 수집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뼈대가 되는 개념입니다.

아래는 ISO 14044:2006에 명시된 제품시스템의 정의입니다.

Product system

collection of unit processes with elementary and product flows, performing one or more defined functions, and which models the life cycle of a product


기본 흐름과 제품 흐름으로 이루어진 단위공정의 집합체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정의된 기능을 수행하며 제품의 생애주기를 모델링한다.

정의가 어렵죠? 간단히, 분석 대상 제품이 거치는 전 생애주기를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본다고 상상하면 됩니다.

ILCD Handbook: General guide for Life Cycle Assessment - Detailed guidance (ⓒ European Union, 2010)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저자 제작

제품을 만들기 위한 원료를 채굴하는 과정에서부터, 사용 후 폐기되어 자연으로 배출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림 하나로 나타냈습니다. 연결된 작은 네모박스는 공정, 공정에 연결된 화살표는 물질/에너지 흐름에 해당됩니다.

바깥에 2개의 거대한 ‘계(sphere)’가 위치합니다. 자연계(Ecosphere)는 말 그대로 인위적인 공정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을, 기술계(Technosphere)는 그 반대를 의미합니다.

어떤 제품의 전과정 환경영향을 평가하려면, 최종적으로 자연계와 기술계 사이 테두리에서 이동하는 모든 물질/에너지의 종류와 양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자연계로부터 들어오거나, 공정을 거친 이후 자연계로 나가는 모든 물질/에너지의 흐름을 기본 흐름(elementary flow)이라 합니다. (주황색 화살표)

분석 대상 제품 한 단위가 생애주기를 거치며 투입되거나 배출되는 모든 기본 흐름의 종류와 양을 나열하는 것이 LCA의 4가지 절차 중, 2번째에 해당하는 전과정 목록분석의 최종 목표에요.

저자 제작

위와 같이 우리의 분석 대상이 되는 시스템을 하나의 표로 뭉쳐놓은 것을 전과정목록표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투입물과 배출물이 모두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에서부터 오고, 인간의 손을 더 이상 거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자연으로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태양광… 등 자연물을 받아 가공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죠. 따라서 전기가 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추적 후, 자연으로부터 얻어지는 물질을 투입물에, 대기/토양/수계로 방출되는 물질을 배출물에 적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걱정이 남습니다. ‘나는 우리 공장의 제조 과정만 아는데… 원료를 채굴해서 우리 공장에 가져오기까지의 정보, 전기를 만드는 공정의 정보는 어떻게 얻지?’

그래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 LCI DB(Life Cycle Inventory Database)입니다. 간단히 전기의 LCI DB = 전기의 전과정 목록표를 의미해요. 즉, ‘우리나라에서 2024년 전기 1kWh가 생산될 때, 원료 채굴~전기 생산까지의 과정에서 평균적으로 이러이러한 물질이 들어가고, 이러이러한 물질이 배출돼’라는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을 LCI DB라 합니다.

DeepAI를 활용하여 생성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공정에, 모르는 물질의 제조 과정을 조립해서 전체 시스템을 만들면 됩니다. 퍼즐 맞추기라 생각하면 쉽습니다.

ILCD Handbook: General guide for Life Cycle Assessment - Detailed guidance (ⓒ European Union, 2010)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저자 제작

이때 우리가 지닌 고유한 공정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부분을 ‘전경 시스템(foreground system)’, 특정하기 어려운 평균적인 데이터를 활용하는 부분을 ‘배경 시스템(background system)’으로 구분합니다. 이 전경 시스템을 기준으로 앞단에 연결되는 시스템을 업스트림(upstream), 뒷단에 연결되는 시스템을 다운스트림(downstream)이라 지칭하기도 해요. (업스트림, 다운스트림은 문맥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전경 시스템 = 분석 범위’입니다. 다만 분석 범위라는 용어는 맥락에 따라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기에, 엄밀하게는 전경 시스템이라는 용어가 적절합니다.

전경 시스템에 대해서는 우리 공장의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므로, 시스템에 포함되는 공정들을 세분화하여 나타낸 뒤 데이터 수집의 단위를 결정합니다.

저자 제작

이렇게 나타낼 수도 있고,

저자 제작

이렇게 더 세분화해서 나타낼 수도 있어요.

핵심은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지’입니다. 각 사진에 있는 박스 하나하나는 ‘단위공정(unit process)’입니다. 이는 투입물과 산출물을 정량화할 수 있는, 데이터 수집의 최소 단위를 뜻합니다. 위 사진처럼 원료 가공, 분쇄, 배합 하나하나를 단위공정으로 지정하고 싶더라도, 각각의 공정이 아닌 원료 가공~배합을 거쳤을 때의 투입/산출물만 알고 있다면 원료 가공~배합까지를 데이터 수집의 최소 단위로 보고 하나의 단위공정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즉 분석 대상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제품시스템을 파악한 뒤, 전경 시스템에서 대략적인 물질/에너지 흐름과 단위공정을 결정짓는 작업이 범위정의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이때 실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지, 누락되거나 중복되는 공정이 없는지를 고려해야 해요.

어려운 개념이었는데, 여기까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글의 초입으로 돌아와서, ‘이것도 넣어야 돼요?’의 흔한 케이스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Q. 제품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스크랩이나 폐수 데이터도 수집해야 하나요?

A. 제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에 해당되므로, 제품시스템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스크랩이나 폐수는 자연계로 바로 배출되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제품시스템이 완결되지 않으며 추가적인 연결이 필요합니다. 철 스크랩의 폐기 방식 (소각/매립/재활용) 또는 폐수 처리 방식에 따라 적절한 다운스트림 데이터를 연결하거나, 공장에서 자체적인 처리 과정을 거치는 경우 해당 데이터를 제품시스템에 포함해야 합니다.

Q. 제조 공정에서 사용하는 냉각수, 스팀 등을 포함해야 하나요?

A. 제품을 제조할 때 사용되는 유틸리티에 해당되므로, 제품시스템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냉각수 생산을 위한 공정이 내부에 존재할 경우 해당 공정을 전경 시스템에 포함하여 분석해야 하고, 외부 구매 등 외부로부터 공급받는다면 적절한 업스트림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도 넣어야 돼요?’라는 질문의 답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네, 넣으셔야 돼요.’로 귀결됩니다. ‘넣어야 할까, 제외해야 할까?’와 같이 정말로 헷갈려서 그렇다기보다는, ‘저 데이터 수집하기도 어렵고 뺀다고 큰 영향도 없을 것 같은데, 꼭 넣어야 해? 🤨’라는 의도로 질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해서 이상적으로 완결된 LCA를 수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일정 조건을 정해 LCA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이터는 제외할 수도 있습니다. 타당한 가정이나 제한사항을 도입해 산정 범위에서 제외할 수도 있고요. 물론 각 경우 모두 해당 사항을 정확히 명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정도의 제외, 가정은 결과의 타당성과 신빙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어요. 불가피한 제외가 필요하다면, 분석 대상과 유사한 제품군의 LCA 가이드라인 혹은 PCR(Product Category rules)을 참고해주세요.


지금까지 LCA의 출발점이 되는 목적정의와, 범위정의 중 제품시스템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 목적정의에는 4가지 세부사항이 존재하며, 각 사항이 뾰족하게 정의될수록 이후 단계에서의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 범위정의 중 제품시스템은 분석 대상의 생애주기를 일련의 공정과 흐름으로 모델링한 것이다.
  •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수준에 따라 설정해야 할 단위공정의 규모가 결정된다.

이번 글의 내용은 원정을 떠나기 앞서, 거대한 숲을 바라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다소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였는데, 정확한 용어를 기억하기보다는 대략의 맥락과 그림을 이해하시면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범위정의 후, 본격적으로 수집해야 할 데이터와 수집 과정에 대해 다룰 예정이에요. 보다 실무적인 내용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

거대한 숲을 함께 보았으니,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 봅시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